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윌리엄 F. 딘 (문단 편집) === 딘 소장 구출 작전은 보급품 후송 작전의 오해 및 와전 === 자세한 내용은 [[딘 소장 구출 작전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김재현(철도 기관사)#잘못 알려졌던 사실들|김재현]] 기관사 문서의 잘못 알려졌던 사실들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그 동안 국내에서는 1950년 7월 19일 [[김재현(철도 기관사)|김재현]] 기관사 등 한국인 철도공무원들이 운전하는 기관차에 30여명으로 구성된 미군 결사대가 탑승하여 대전 전투에서 실종된 미 제24보병사단 사단장 '윌리엄 F. 딘' 소장을 구출하기 위한 일명 '딘 소장 구출 작전'을 실행하였고 이러한 '딘 소장 구출 작전' 수행 중 김재현 기관사와 미군 결사대원 29명이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었다.(1953년 교통부 발간 한국교통동란기와 1983년 황남호 본무기관조사와 현재영 보조기관조사의 자필 경위서에서 기관차에 탑승했던 미군의 정체를 '미군 결사대'로 명명하고 총원 30명, 전사자 29명이라고 기록하였지만, 후대에 '딘 소장 구출 작전'을 특수 작전처럼 과장하기 위해 '미군 특공대', '미군 특전단'[[https://www.megaeconomy.co.kr/news/newsview.php?ncode=1065591006089934|#]], '미 해병 특수부대'[[https://www.youtube.com/watch?v=oz_kq7Lekk8|#]][* [[6.25 전쟁]]에서 [[미합중국 해병대|미 해병대]]의 한국 전개는 제1임시해병여단이 8월 2일에 부산에 도착하면서부터이다.] 등으로 확대ㆍ 재생산 되었고 병력과 전사자 기록도 총원 33명, 전사자 32명으로 와전되었다.) [[한국철도공사]]가 [[대한민국 철도청|철도청]] 시절부터 호국철도의 상징으로 주도적으로 홍보하여 널리 알려진 이 '딘 소장 구출 작전' 영웅담은 흡사 [[전쟁 영화]]의 [[각본|시나리오]] 같은 화제성으로 말미암아 오랜 세월에 걸쳐 [[국가보훈부]]와 같은 정부기관과 언론사 등에 의해 '구출 작전'이 허위임을 단번에 판명할 수 있는 기관차의 대전 진입 시점, 미 제24보병사단의 대전 철수 시점, 딘 소장의 실종 시점 등 공식 전사(戰史)에 기록된 [[대전 전투]]의 사건 발생별 시간 순서 비교와 미군 결사대원들의 소속과 신원 파악 등 기본적인 [[팩트체크]] 및 [[교차검증]]이 생략된 채 그대로 인용되고 '세계 전쟁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구출 작전'[[https://www.g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62915|#]] 등으로 무분별하게 확대·재생산되면서 정설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딘 소장 구출 작전'은 절대 팩트가 아니며, 역사적 사실은 [[대전역]] 안의 [[화차(철도)|화차]] 10량에 적재되어 있던 탄약 등 보급품의 후방 이송 작전이었는데 그 동안 이 작전이 국내에서만 '딘 소장 구출 작전'으로 와전되어 [[한국철도공사]]를 통해 광범위하게 잘못 알려진 것으로 미 육군 군사(戰史) 연구소(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의 6.25 전쟁 공식 전사(戰史) - [[https://history.army.mil/html/books/020/20-2/CMH_Pub_20-2.pdf|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 (pp. 168–169)]]과 [[https://24thida.com/books/books/Dean_general_through_capture.pdf|딘 장군 회고록 - General Dean's Story (p. 37)]] 등의 과거 자료부터 현재 기밀해제되어 발굴된 미 제24보병사단 [[정보참모|정보참모부 (G2)]] 보고서 등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2416|최신 자료]]까지 모든 미군 측 대전 전투 공식 전사(戰史) 및 기록에서 '보급품 후송 작전'으로 일관되게 기술하고 있다. 덧붙여 이 '보급품 후송 작전'은 도쿄 미 극동사령부의 7월 21일자(일본 시각) 전황 브리핑에서도 언급되었으며, [[AP통신|AP 통신사]]를 통해 전 세계로 타전되어 'Journal-Every Evening', 'Spokane Daily Chronicle' 등 수많은 미국 신문에 7월 20일자(미국 시각)로 보도되었다. * ''''Journal-Every Evening' 1950년 7월 20일자 기사 원문 발췌''' >'''"A locomotive crew trying to take a late haul of supplies from Taejon was ambushed en route to the station."''' 또한 대한민국 국군 측 역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가 1979년 발간한 6.25 전쟁 공식 전사(戰史) - [[https://new.mnd.go.kr/user/imhc/upload/pblictn2/history_of_war_in_korea02/index.html|한국전쟁사 제2권 지연작전기 (p. 536)]]의 대전 전투 [[절(책)|절]] 연구 항목에서 국내와 미국 측 자료를 통해 작전 목적을 비교 분석한 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생존 철도공무원들의 증언에서 모두 이 열차작전의 목적이 딘 소장의 구출에 있다고 하였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며 '딘 소장 구출 작전'은 와전이라고 못 박았으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2008년에 발간한 6.25 전쟁 공식 전사(戰史) - [[https://new.mnd.go.kr/user/imhc/upload/pblictn2/625_06/index.html|6.25전쟁사 제4권 금강-소맥산맥선 지연작전 (pp. 161–162, 주석 p. 217)]]에서는 '대전역 보급품 후송 실패'라는 제목의 단락으로 기술하여 '딘 소장 구출 작전'이 아닌 '보급품 후송 작전'이었음을 명확히 하였다. 특히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소속 [[전쟁기념관]]에서는 2020년에 발간했던 학예지 - [[http://archives.warmemo.or.kr/rsrch/detail/rsrchDetail.do?MID=UM00020&archvNttNo=3725|호국인물총서 (1): 6·25전쟁 개전의 순간 (pp. 118–123)]]에서 기밀해제된 미 제24보병사단 [[정보참모|정보참모부(G2)]] 보고서를 국내 최초로 입수하여 '딘 소장 구출 작전'이 아닌 '보급품 후송 작전'이었음을 이론의 여지없이 입증하여 기술하였고, 작전 목적의 오해에 대해 각주를 통해 한번 더 자세히 설명하였다.[* '6.25전쟁사 제4권 금강-소맥산맥선 지연작전'과 '호국인물총서 (1): 6·25전쟁 개전의 순간'에서 작전 목적을 '딘 소장 구출'이 아닌 '보급품 후송' 그리고 기관차에 탑승한 미군을 '결사대원'이 아닌 '호송병'으로 정확히 기술하였지만, 철도공무원들의 증언에서 작전 목적과 호송병을 '결사대원'으로 오해한 점 이외에는 진실로 추정하여 호송병 30명이 탑승하여 29명이 전사했다고 기술한 부분은 향후 개정판에서 총원 6명에 전사자 없음으로 정정해야 할 팩트 오류이다.] * '호국인물총서 (1): 6·25전쟁 개전의 순간' 각주 발췌 >'''"당시 김재현 기관사의 기관차에 부여된 임무를 두고 거듭되는 오해를 별기한다. 당시 승무원인 현재영·황남호의 수기 증언을 비롯해 국내의 각종 문헌과 현양 행사에서는 당시의 철도 수송 임무를 ‘딘 소장 구출 작전’으로 묘사해 왔다. 그러나 대전 철수작전 당시 작성된 미 제24사단 정보처 보고서와 미 육군,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에서 각각 발행된 공간사, 딘 소장의 회고록 등에 따르면 이들의 임무는 대전역에 적재된 보급품을 영동역으로 철수시키는 것으로 딘 소장의 구조와는 무관한 임무였다.[24th Infantry Division G-2 Journal, Vol. 8, For the Period 191700K July to 221550K July 50 ; Appleman, Roy E., South to the Nakdong, North to the Yalu , Center of Military History, United States Army(1992), 169쪽; Dean,William F. and Worden, William L., General Dean’s Story , the Viking Press(1954), 37쪽;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 4: 금강-소백산맥선 지연작전』, 2008, 161∼162쪽]"''' 부연하자면 딘 소장이 7월 20일 16시경에 대전역에 있던 탄약 등 보급품이 적재된 [[화차(철도)|화차]] 10량의 후방 이송 명령을 [[영동군|영동]]에 위치한 사단 지휘소에 하달하였고 이 명령에 따라 [[김재현(철도 기관사)|김재현]] 기관사와 부기관사에 해당하는 황남호 본무기관조사, 현재영 보조기관조사가 운전을 맡고 30명의 미군 특공대원이 아닌 6명의 미 제24보병사단 병참부대 소속 미군 6명이 [[호송병]]으로 탑승한 채 7월 20일 16시 20~30분경에 기관차가 [[이원역]]을 출발하여 [[대전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대전역]] 도착 전 북한군에 공격을 받아 손상된 [[탄수차]]로 인해 [[화차(철도)|화차]] 10량을 견인할 수 있는 동력이 부족하여 '보급품 후송 작전'에 실패하고 복귀하는 도중 [[김재현(철도 기관사)|김재현]] 기관사가 순직하고 현재영 보조기관조사가 부상을 당하였다. 결국 후송에 실패한 [[대전역]]의 [[군수품|보급품]] 적재 [[화차(철도)|화차]]들은 7월 21일 08시에 [[미국 공군|미 공군]]이 폭격으로 파괴하여 북한군에게 노획되는 것을 막았다. 그 후 딘 소장은 7월 20일 18시부터 대전에 잔류하던 미 제24보병사단 34연대 병력들과 함께 차량 대열로 부대 건제를 유지한 채 대전에서 철수하였다. 그러나 철수 대열이 옥천가도에 들어선 이후 북한군의 매복 공격을 당해 차단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도보로 후퇴하던 중 낙오하여 홀로 본대를 찾아 대구로 남하하다 약 한 달 후인 8월 25일 북한군에 포로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